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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스튜디오] SKT 공식 대리점 점장 & 어린왕자 스튜디오 대표 공영환을 만나다.
  글/사진 육송이 에디터 김재연 “친구들이 제게 말하곤 해요. 너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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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4.03.13 477회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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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스튜디오] SKT 공식 대리점 점장 & 어린왕자 스튜디오 대표 공영환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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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육송이 에디터 김재연

 

“친구들이 제게 말하곤 해요. 너는 아침 드라마 주인공 같다고. 저는 꽤 어릴 적부터, 벽 앞에 섰던 적이 많았거든요. 너무 힘들었죠.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제가 벽에 너무 바짝 붙어 섰던 거예요. 나중에 보니까, 그 벽은 한 쪽만 막혀있더라고요. 포기하지 마세요. 그것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더욱. 제가 만약 그때 포기했었다면, 이제 와서 이렇게 말할 수 없었겠죠?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안녕하세요, 영환씨.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 드립니다.

예, 안녕하세요. 저는 SK공식 대리점 점장이자, 어린왕자 스튜디오 대표를 맡고 있는 공영환이라고 합니다.

 

영환씨를 소개 할 수 있는 수식어가 두 가지나 되네요. Two Job이라니. 하나의 직장도 갖기 힘든 요즘, 어떻게 두 가지의 직장을 가지게 되었는지 다들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Two Job을 가지게 된 건, 사실 단순한 이유에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길 원했어요.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그걸 유지할 수 있게 돕는 수단이 필요하더라고요. 핸드폰 대리점과 스튜디오 중에서 사실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스튜디오에요. 사진이 제 취미이자 하고 싶은 일이거든요. 그래서 맨 처음에는 스튜디오만 운영했는데, 대학교 앞에 위치하다 보니 방학기간의 리스크가 너무 크더라고요. 스튜디오만으로는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대리점의 경우에는, 특성상 하루 종일 매달려 있어야 하는 일이 아니에요. 고객의 니즈가 있을 때에만 움직이면 되거든요. 더군다나 제가 과거에 우연한 기회로 경험해 봤던 일이라, 접근하기에도 좋고 수익률도 높은 편이라서 스튜디오와 병행하기에 안성맞춤이죠. 그래서 두 가지의 직장을 가지게 된 거예요. 흔히들, Two Job이라고 하면 Main과 Serve가 있잖아요. 제겐 그런 개념이 아닌 거예요. 현실에서의 Main은 대리점이고, 제 마음속의 Main은 스튜디오에요.

 

어찌 보면 필요에 의해 대리점 일을 하시는 건데, 힘든 부분은 없나요?

힘든 부분 있죠.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랄까요. 물론, 스튜디오 일을 하면서도 사람을 상대하고 스트레스 받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일에 관한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크니까요. 그런데, 그 외의 업무상의 스트레스는 많지 않아요. 일이 엄청 많거나 힘들지도 않고, 이미 한 번 해봤던 일이니까 수월하죠. 또 제가 점장이잖아요, 위에서 뭐하고 하는 사람도 없고. 회사에서 내려오는 게 있긴 하지만, 크게 스트레스 받을 정도는 아니에요. 무엇보다도 제가 원래 ‘기계’를 좋아하거든요. 핸드폰도 기계니까. 예전에 한참 핸드폰에 빠진 적도 있었어요. 이건 모델명이 어떻고, 화면은 몇 인치고. 이런 것들 다 외우고 다녔었죠. 사실, 어떤 일이든 스트레스가 없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좋아서 하는 스튜디오 일에서조차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필요에 의해하는 일이기에 더 힘들다고 할 건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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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 중에 직장에서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취미생활을 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저는 그와 반대죠. 취미생활. 즉,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직장생활을 병행하니까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또 그래요. 처음 시작은 그렇게 했어도, 어느 순간, 취미생활로 얻은 에너지로 직장생활에서 버티는 직장인들이 굉장히 많으니까요. 그런 분들에게 현실에서의 Main은 각자의 직장이지만, 마음속에서의 Main은 각자의 취미생활 아니겠어요? 제가 약간 다른 점은, 그 취미생활이 조금 더 전문화되고 직업화됐다는 거겠죠.”

 

영환씨의 전공이 정말 뜻밖이에요. 의외의 전공에서 어떻게 지금에까지 이르렀는지가 궁금해요.

제 전공은 의학공학이에요. 지금 하고 있는 일과는 많이 달라서, 들으면 다들 의아해하죠. 의학공학을 전공해서 어떻게 지금에까지 이르렀는지 이야기하자면, 제 중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요. 저는 어려서부터 음악 자체를 좋아했어요. 듣고 따라 부르고. 그러다가, 중학교 1학년 때에 베이스라는 악기를 접했는데, 3학년 되면서부터 전공으로 마음먹고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도 이유는 단 한 가지였거든요. 그냥 너무 좋아서. 하루에 8~9시간씩, 손가락에 베이스 줄 두께만큼 패일 정도로 열심히 연습했어요. 그런데, 혼자 연습하는 건 한계가 있잖아요. 한계를 만나고 이제는 레슨을 받아야 하는데, 당시의 제 상황으로는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저 혼자 살았거든요. 생활비도 스스로 충당했는데, 레슨비가 어마어마하게 비싼 거예요. 더군다나 충주에서는 받을 데가 없어서 서울로 올라가야 했고. 현실적인 벽에 부딪힌 거죠. 다른 친구들처럼 욕심부려서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제 상황과 판단으로는. 너무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포기했어요. 포기하고 그냥 공부했는데, 음악 좋은 걸 포기를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다가 찾은 게 음향이었어요. 음향을 전공하기 위해 찾다가 결국 진학한 게, 바로 의학공학이고요.

 

원래 악기를 전공하고 싶으셨군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꿈을 접게 돼서 참 속상하셨겠어요.

그렇죠. 속상하다는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였어요. 저는 마음고생을 하면 몸이 아파요. 그때 당시 학교를 못 나갈 정도로 아팠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그 이후로 베이스를 전공하고 싶다는 마음은 싹 접었어요. 상처가 컸기 때문에, 오히려 한 번에 미련 없이 접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신, 베이스 자체를 끊은 건 아니고요. 저는 크리스천인데, 예배의 도구로 꾸준히 잘 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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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 찾은 방향이, 음향이에요.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나요?

‘아, 이걸 해야지’하고 맨 처음 시작하게 된 건 아니에요. 예배를 통해 ‘음향’을 접할 일이 많았는데요, 한 번 두 번 접하다 보니, 어느 순간 ‘아! 음향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향이야말로 제가 좋아하는 ‘음악’과 ‘기계’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속으로 쾌재를 불렀죠. 너무 좋았어요. 그때부터 혼자 공부하면서, 엄청 팠죠. 아까도 베이스에 빠져서 하루에 8~9시간씩 연습했다고 했잖아요? 제 성격이 그래요. 하나에 꽂히면 완전 파고드는 스타일이죠. 그때 당시 혼자 공부한 음향 지식이 아직까지도 도움이 될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러면서, 이 길로 가리라 마음먹었죠.

 

그런데, 음향을 하기 위해서 진학한 곳이 의학공학이라는 게 이해가 잘 안돼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어요. 맨 처음, 음향으로 가려고 했을 때, 저도 무조건 음향 관련된 과로 가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주위의 음악 하시는 분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나니까 그게 답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전기 계통의 관련 과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현대 음악은 전기와 기계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거든요. 마이크부터 스피커까지. 모든 악기들도 다 그와 관련되어 있어요. 거기에 대한 탄탄한 지식과 이해가 있고, 그 위에 음악적인 부분을 얹어서 함께 가야지만 그 분야에서 롱런할 수 있죠. 그래서 대학교 진학은 전기와 기계에 관련된 과로 넣었어요. 그때 당시 수시로 6군데 정도 합격했었는데, 그중 선택한 게 의학공학이에요. 제가 필요한 부분들을 포함하면서도, 혹시 저의 계획이 틀어졌을 때를 대비한 보험이었죠. 의학공학은 특수하기도 하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라, 졸업하면 바로 취업할 수 있거든요. 그렇게 제 전공이 의학공학이 된 거예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음향과 관련 된 활동으로는 어떤 것들을 하셨나요?

음향을 처음 접하고 개인적인 활동을 한 건 고등학생 때부터고, 본격적으로 음향 쪽 일을 하게 된 건 대학교 때부터였어요. 대학교 입학하고 나서 가정에 일이 생겼는데, 제가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일은 해야 하는데, 학교를 놓을 순 없었어요. 학교는 계속 다니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일을 찾던 중에, 알고 지내던 음악 하는 형이 녹음실에서 일해보자고 했어요. 지금은 바뀌었지만, 신촌에 있는 JF SOUND라고. 그 안에 있는 녹음실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죠. 전국에 있는 교회에 음악 시공하러도 많이 다니고, 가수들이 녹음하러 오면 옆에서 어시스트하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나중에 저희 회사가 뮤직뱅크로 들어가게 됐는데, 저는 가수들 인이어를 믹싱해주는 단계까지 올라갔어요. 1년 만에. 원래는 바닥부터 시작해서 그 자리까지 4~5년쯤 걸리는데, 제 사정을 아시는 오너의 배려로 빨리 오를 수 있었어요. 그러다가 군대를 다녀왔죠. 사실, 그 사이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대학교 축제에도 가고, 전국을 다 돌아다녔죠. 군대 가서도 휴가 때마다 나와서 일했어요.

 

안 좋은 상황에서 다행히 일이 잘 풀렸네요.

그렇죠. 저는 그동안 너무 재미있었어요. 힘들기도 했지만, 정말 행복했죠. 그때 당시 저는 돈이 되는 일을 찾았었는데, 마침 재정적인 문제도 해결하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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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하는 일은 음향이 아니네요? 영환씨가 하고 싶은 일이면서, 재정적인 부분도 해결되는 최고의 그림인 것 같은데요.

음향을 접을 수 밖에 없었던 사건이 있었죠. 공연장에서 일 하던 중이었어요. 제 몸집의 거의 20배는 큰 대형 스피커 앞에서 라인 작업 중이었는데, 아르바이트 하는 친구가 신기하다고 이것 저것 막 눌러보다가…… 제가 지금 오른쪽으로는 못 들어요. 정말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린 거죠. 오른쪽을 못 들으면, 이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공연장에는 두 개의 스피커로 소리가 나오고 가수들도 양 쪽으로 듣는데, 나 혼자만 한 쪽으로밖에 못 들으니까. 맨 처음에는 숨겼어요. 그런데 티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그만두게 됐죠. 정말 어쩔 수 없이……

 

많이 힘들었겠어요.

많이 힘들었죠. 음향이 저의 꿈이자, 앞으로 평생 할 일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방황을 조금 했어요. 이 일 저 일하면서. 그때, 핸드폰도 팔아봤던 거고요. (웃음)

 

영환씨의 꿈이자 평생 함께 가고 싶었던 음향. 그토록 빠졌던 음향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어떤 아이가 장난감 플라스틱 칼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런데 일반 플라스틱 칼은 보면, 그냥 흰색. 딱 봐도 장난감처럼 생겼잖아요. 음향은 그 장난감 칼에 은색 락카를 뿌려주는 것과 같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장난감 칼을 조금 더 진짜처럼 보이게 해주는 것처럼, 음악을 조금 더 음악스럽게 만들어주죠. 음악이 담은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될 수 있게 해주고, 듣는 사람이 제대로 듣게 하려면, 음향을 거치지 않고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음향 일을 하는 동안, 제일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워낙 많아서. 음,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군대 빼면 한 3년 정도 음향 일을 했었는데요, 그동안 워낙 화려하고 찬란하게 살아서. 뮤직뱅크에서 소녀시대랑 인사하고 악수도 해보고. 그런데요, 그런 것보다는 사실 봉사하러 다닌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돈도 안 받고 고생은 엄청 했을 때. 끝나고 나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 같은 보람이 들거든요. 충주에 엔돌이라는 중창단이 있었는데, 제가 거기 선배거든요. 아침에 휴가 내고, 예배 드리러 내려갔는데, 아무 것도 준비가 안 된 거에요. 애들이 스피커랑 마이크 몇 개 빌려놓고, 절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그 때, 충주에 아는 분들 총동원해서 하루 만에 장비 다 빌리고 직접 케이블 만들어서, 500명 단위의 집회를 했어요. 그게 가장 기억에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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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만 들어도 음향을 향한 영환씨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런 음향을 잃고 나서 방황도 했다고 하셨는데, 그 방황은 어떻게 멈추게 되었나요?

방황하던 시절, 저한테 다가온 게 바로 카메라였고, 사진이었어요. 군대 가기 전에 잠깐, 카메라를 잡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기억이 나더라고요. 카메라를 어떻게 얻어서, 밤낮으로 매일같이 찍으러 다니는데,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마음이 다시 살아나더라고요. 그때부터 풍경을 시작으로 해서 정물, 결국엔 사람까지 엄청 찍었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다양한 소재를 달라진 시각으로 담게 되더라고요. 맨 처음엔 취미로 사진을 찍다가, 결국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놓지 못하겠더라고요. 물론, 저 혼자 좋아하기만 할 뿐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면, 프리랜서로 활동할 수 없었겠죠. 저는 기성의 사진 찍는 분들이 잘 찍으려 하지 않는 각도랄까. 그런 시각을 찾아보고 시도하는데, 그 도전에 많은 분들이 지지해줬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제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하고 싶었고, 그런 제 방식이 사람들의 마음에 들었기에 현재, 프리랜서 사진 작가로 3년째 일하는 중이에요. 그러다가 올해 스튜디오를 차린 거고요.

 

사진 촬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작품이 있나요?

웨딩 촬영 때, 신부의 아버님의 손을 찍은 적이 있어요. 원래 웨딩 사진을 찍을 때, 그 부모님의 손만 딱 찍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주인공 위주로 다 찍으니까요. 그런데, 지나가면서 문득 신부 아버지의 손이 눈에 들어왔는데, 너무 찍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찍고 제 임의대로 골라서 보내드렸어요. 그런데 보내고 나서 전화가 오더라고요. 대부분 사진을 보내드리고 나서 오는 전화는 항의 전화에요. 거의 백 퍼센트. 긴장하고 받았는데, 울면서 말씀하시더라고요. 자기 아버지의 손이 그렇게 거친 줄 몰랐다고, 내가 못 보던 것을 보여줘서 고맙다고요. 그 말을 들으면서 오히려 제가 더 고마웠어요. 그게 제일 기억에 남네요. 아, 한 가지 더 있다면, 제가 처음 풍경 찍으러 나가서 찍은 사진이요. 기술적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초보와 다름없을 때에 그냥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찍은 첫 번째 사진이에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혹시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나 스스로 생각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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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풍경 찍으러 나가서 찍은 사진 (사진 제공 공영환.)

 

사진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사진은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진 한 장에 그때의 상황, 감정 등 모든 기억이 다 담겨있죠. 그리고 그 사진 한 장을 통해, 오래도록 간직하고 나눌 수 있어요. 그게 매력이죠.

 

그런 사진을 통해, 영환씨가 꿈꾸는 모습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사진을 통해, 가장 기분 좋고 보람되는 때는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때에요. 그때 함께 했던 사람들과 공유하며 나눌 수 있고, 그 사람들이 못 봤던 걸 제가 보여줄 수도 있죠. 제가 늙고 늙어도, 순간이 영원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그 사진 속에 우리는 늙지 않았죠. 그때의 기억들도 늙지 않았고요. 그래서 사진을 통해 끝까지 함께 하고 간직하고 나눌 수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인 것 같아요. 제가 바라는 건 그거에요. 제가 말한 사진의 매력, 사진에 대한 저의 초심 그대로를 지켜나가는 것. 소박한 것 같지만, 어려운 일이죠. 사진이 대중화되고 사진에 대한 관심이 많아질수록 사진의 진정한 가치를 지켜나가는 건 오히려 어려운 일 일 거에요. 그냥 하나의 도구로 전락되기 쉬우니까요. 그렇기에 더욱 지키고 싶은 마음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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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 꼭 지키셔서, 먼 훗날 영환씨를 다시 만날 때도 같은 답을 들었으면 좋겠네요. 악기, 음향, 사진까지 참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는데요, 아, 물론 지금도 활동 중이지만요. 혹시 또 다른 도전 영역이 생겼나요? 혹은 생긴다면?

요즘 시간적 여유가 많아요. 하루에 네 시간 정도는 정말 여유롭죠. 그래서 곡을 하나 쓰고 있어요. 작곡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고, 그냥 제가 좋아하는 코드 진행에 멜로디를 얹고, 제 이야기를 가사로 써보려고 하는 중이에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겪은 많은 일들을요. 친구들은 제게 네 이야기는 아침드라마로 엮을 정도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 때에는 참 힘들었지만, 요즘에는 그 이야기가 있다는 게 감사해요. 꼭 어떤 결과물을 내겠다는 마음 보다는 제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힘과 도전 혹은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취미네요. 응원하겠습니다. (웃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영환씨의 가치관이 궁금하네요.

가치관이요? 음, 가치관이라는 말 어려운 것 같아요. 가치관이라는 단어가 어떤 말인지 그 의미를 정확히 모르겠어요. 그냥 저는 베푸는 걸 좋아해요. 받은 게 많거든요. 힘들고 어려울 때, 물질적인 도움도 있었고,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주위에 힘이 되어준 고마운 사람들도 있고. 제가 이렇게 무사히 지내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받은 만큼 그것을 돌려준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죠. 돈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이 살지만, 베풂에 대한 욕심은 계속 생기는 것 같아요. 이렇게 나눴을 때,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거, 웃는 게 좋아요. 그리고 고마워하는 게, 오히려 제가 더 고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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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삶의 목표나 비전이 있다면?

사실,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참 어려운데요. 딱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그냥 저는 제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있어요. 그렇다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건 절대 아니고요. 그 마음이라는 건 신앙적인 부분과 관련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네 마음대로 산다고 볼지 몰라도(웃음), 저는 받은 대로 산다고 생각해요. 또 제 마음이 가는 대로, 좋은 대로 살되, 남의 마음 불편하고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지금 너무 행복하거든요. 요즘 생활 속에서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면서 사는 것 같아요. 음향에 관한 부분도, 만약 음향을 직업으로 삼고 그 일을 하고 있다면, 더 행복했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직업으로의 꿈은 접어야 했고 여전히 아쉽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감사하게도 활동하고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오피스 후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안 된다고 포기해버리면, 다른 될 일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제 삶을 돌아보면, 어릴 때지만 벽 앞에 섰던 적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제가 벽에 너무 바짝 붙어 섰던 거예요. 뒤를 돌아볼 생각도 못하고. 벽만 보이니까 너무 힘들었죠. 그때마다, 나쁜 생각도 많이 했었어요. 너무 힘드니까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벽은 한 쪽만 막힌 그런 벽이었어요. 시간이 지나면 다른 길이 보이더라고요. 가게에 찾아오는 많은 친구들이 생각보다 자기 속 이야기를 많이 해요.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참 많더라고요. 학업, 가정, 재정 등등. 그런데 그 가운데에서도 어떤 쪽이든 길은 있어요.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가면 조금 고될 수는 있어요. 하지만, 나중에 그 힘든 길을 헤치고 올라갔을 때 눈앞에 보이는 그림은 환상적이죠. 물론 힘들죠. 우거진 숲 속을 칼 한 자루 없이, 맨손으로 헤치고 가는 기분일 거예요. 그런데 그걸 다 헤치고 나갔을 때. 혹여 정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지나온 길과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그렇게 보람되고 행복할 수 없어요. 포기라는 단어 쉽게 안 했으면 좋겠고, 특히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더욱.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지 못하더라도 잃어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언젠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할 수 있게 되고 만족, 행복, 기쁨 등등 좋은 것들로 내게 돌아와요. 이 악물고 사세요.

“바라고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꼭 이루어지진 않아요. 그렇게 된다면, 너무 소설 같잖아요. 그런데 그렇진 않더라도, 비슷한 행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계속 바라고 내 생황에서 그 바라는 것을 했을 때에. 내가 원하는 모습은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이뤄지는 건 맞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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