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이 다 되어서 도착한 합정의 한 카페. 한 눈에 보아도 예술할 것 같이 생긴 그녀를 찾았다. 생기 가득한 얼굴로 내가 도착하는 지도 모르고 작업에 열중하던 그녀. 겸연쩍은 웃음에도 그림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듯 하다. 그림을 그려서 일을 하고, 전시도 하고 강의도 한다는 그녀. 게다가 취미도 그림. 온통 그림 속에 빠져있는 그녀를 만나보자. 
 
에디터 단향 윤혜원
포토그래퍼  단향 윤혜원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나봐?
외주작업들로 패키지에 들어가는 일러스트 같은 것도 그리고. 개인 전시도 하고. 강의도 하고 있지. 이런 것과 상관없이 게임 캐릭터를 만들기도 하고. 컴퓨터로 하는 작업들도 하고.


오호. 그럼 펜드로잉이 무엇인지부터 소개해준다면? 
그말대로 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거지.


하하. 우문현답이다. 요즘 펜드로잉을 많이 볼 수 있는 거 같은데, 펜드로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아무래도 재료가 간편하니까 많이들 하는 거 같아. 펜은 문구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것이니까.


펜이라는 게 한정적인 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양한 그림이 가능한가? 
당연하지. 펜도 다양한 색이 있으니까 본인의 느낌을 잘 살려서 그림을 그릴 수 있지. 특히나 레터링을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거칠게 표현할 수도 있고. 혹은 아기자기한 캐릭터를 그릴 수도 있지.


하긴 그림이라는 게 표현이 중요하지. 
응. 개인의 성향이 중요한 거 같아. 사실적인 그림이든 상상 속의 그림이든. 혹은 단순한 그림을 그림, 복잡한 그림 등 다양하잖아. 작가들의 성향에 따라서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가 있지.




ⓒ 수줍수줍한 그녀의 미소. 보기만해도 기분이 좋다.


펜 드로잉은 언제부터 시작했어? 
고등학생 때는 펜드로잉의 개념을 가지고 했던 것은 아니고, 시간이 날 때 끄적였던 정도였어. 그러다가 대학교 다닐 때 지하철에서 많이 그렸지. 집이랑 학교를 왔다갔다하는 통학시간이 길어서,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더라고. 그래서 그 시간에 지하철 내부의 공간, 사람들을 그렸어. 그렇게 펜에 익숙해졌지.


지하철에서 그리면 사람들이 많이 쳐다보지 않나? 
그래서 자는 사람, 서있는 사람들을 빠르게 스케치 했지. 그러면서 크로키 능력을 키운 거 같아. 짧게 보고, 관찰하고, 그리는 거지. 그래서 관찰력이 높아졌어.


전공은 뭐였어? 
산업디자인.


그림은 언제부터 그렸는데?
미술은 엄청 늦게 시작한 편이야. 고 3 여름방학 때부터. 원래는 물리 선생님이 되고 싶었거든. 고등학교 1학년 때도 잠깐 미술을 했는데, 이건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뒀었어.


엄청 짧게 공부했는데도 바로 합격한거야?
고 3때는 떨어졌지. 사실 재수할 때 ‘미술은 역시 아닌가보다’ 하고 공부를 했어. 그런데 자꾸 미련이 남더라고. 그래서 수능이 끝나고 다시 미대입시를 시작했지


근데 붙었어? 
운이 좋게. 학원에 다닌 건 1년도 안 되었지.






감각이 좋은 가봐. 
학원에 많이 안 다녀서 기본기는 부족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스타일에 제한을 두지 않게 된 거 같아.


그런데 왜 산업디자인으로 안 가고?
1, 2학년 때는 자동차디자인을 전공했어. 그런데 난 물체를 3D로 구현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3학년 때, 시각디자인으로 전과를 했지. 그러면서 다른 과 수업을 많이 들었지. 패션일러스트도 배우고 애니메이션 학과에서는 인체 드로잉도 해보고, 회화과 수업도 많이 듣고. 그리고 학교에 다니면서 미술학원 아르바이트는 계속 했었거든. 그렇게 계속 그려보는 경험을 해보니까 ‘디자인이 나랑 안 맞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어.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더라고.


미술학원 아르바이트는 어땠는데?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강사를 9년동안 했지. 대학교 4학년 때부터는 전임으로 일을 했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은 참 재미있었어. 예전에는 물리선생님이 되고 싶기도 했거든. 교직이수도 했었고. 학교라는 곳에 맞지 않을 거 같아 일찍이 학교 선생님의 꿈을 접기야 했지만. 하지만 미술학원에만 있으니까 현실감이 사라지더라. 나는 나이를 먹지만, 내가 만나는 학생들의 나이는 일정하니까. 내가 발전할 수 있는 데에도 한계가 있고. 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 그래서 작년 말부터 조금씩 준비를 해왔지. 내 그림도 많이 그리고, 외주 작업들도 하고.






그럼 이제 교육은 안 하는 건가? 
아니. 사람들 가르치는 일은 계속 하고 있어. 일반인 대상으로. 나이나 전공 이런 거와 전혀 상관없이. 전문적이지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강의를 하고 있지.


일반인 강의는 어디서 하는데? 
하비틱에서 온라인 강의를 하고 있고. 이모랩이라는 곳에서는 오프라인 강의를 하고 있지.


직장인들이 많이 듣는 편인가? 
많이 들어. 대학생들도 꾸준히 있지만. 삶에 지친 직장인들이 많이 오는 거 같아. 펜이라는 도구가 워낙 사용이 쉬우니까. 일이 아닌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에 굉장한 즐거움을 가지는 듯 해.


취미로서의 미술은 어떤 장점이 있을까? 
잡생각 없이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거 같아. 그리고 무언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 낼 수 있다는 게 좋은 거 같아. 처음에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그려보세요’라는 걸 많이 힘들어 하더라고. 하지만 익숙해지면 내가 생각했던 것들, 느꼈던 감정을 표현해서 남길 수 있게 되지.


강의를 하면서 뿌듯했던 적은? 
직장인들을 보면 엄청 답답해 보일 때가 있어. 지쳐있는 사람들도 많고. 그런 분들과 수업을 하면서, 조금씩 생기를 찾아가는 걸 볼 수가 있어. 그럴 때 많이 뿌듯하지. 또 처음에는 뭘 그려야 할지도 몰라서 막막해 하던 사람들이 그리고 싶은 걸 찾아와서 그리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게 좋아.




ⓒ 보기만해도 손이 아파오는 듯한 그녀의 작품. 멋있음
 

그럼 본인은 다른 취미는? 
그림 그리는 게 취미이자 일인 거 같아. 습관처럼 그림을 그려. 시간도 잘가고


많은 그림들 중 펜 드로잉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해? 
아무데서나, 언제나 쉽게 그릴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은 거 같아. 그리고 기법이나 스킬 없이도 본인의 스타일에 맞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게 좋지.


펜드로잉을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는 재료는? 
뭐가 좋다 이런 것 보다는 저렴한 펜을 사서 습관을 들이는 게 제일 좋은 거 같아. 그리는 걸 습관들이면서 선을 그리는 게 자유롭게 가능해진다면, 두께나 필기감 등을 본인에게 맞는 걸 찾아보는 게 좋아.


그럼 펜 드로잉을 잘 배우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 
일단 보고 관찰을 하고 그리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아. 펜 일러스트라는 게 자신이 그리는 만큼 그림이 완성되는 거니까. 눈으로 보는 것처럼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게 중요해.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것, 가방에 있는 물품들을 하나씩 그려보는 게 도움이 많이 될 거야.


그렇게 조금씩 늘려가는 거구나. 
머릿 속에 있는 것을 꺼내고 싶은데, 손이 따라오지 않아서 못하는 사람이 많거든. 그래서 보는 것들을 그려보고, 숙달이 되면 조금씩 발전시키는 거지. 화면을 구성하고, 다른 기법을 따라해보고. 그렇게 본인의 스타일을 완성해 나가는 거지.

 


ⓒ 삐리삐리끼리끼리쿵코아쿵쾅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그림을 그릴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 
오프라인 강의가 일주일에 하루 3시간씩 6주 과정이야. 처음에는 표현하는 거 자체를 참 힘들어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벌써 이렇게 시간이 되었나? 왜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가지”라고 하지. 꾸준히 그리기만 하면 한 달이 안 되어서도 눈에 띄게 발전이 되는 거 같아.


펜 일러스트 말고 다른 것들도 다른 재료들도 많이 쓰는 편인가? 
재료는 많이 써본 거 같아. 수채화, 콩테, 연필등등. 다양한 스타일의 학교들을 지원하다보니, 써본 재료들이 많은편이야. 그게 많이 도움이 된 거 같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런 저런 재료로 연구도 많이 했었고. 그래서 재료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아. 주로 하는 게 펜인 거지.


작품을 보니까. 색이 알록달록 많이 들어간 것들이 많더라.
다양한 재료를 연계해서 많이 그리고 싶어. 펜 일러스트라고 하면 단색을 많이 생각하는데, 색을 많이 사용해보고 싶어.


그럼 어떤 걸 많이 그려? 
요즘은 패턴을 이용해서 그리는 걸 많이 하지. 또 내가 엉뚱한 상상을 좋아해서. 깨알 같은 요소가 담긴 공간을 많이 그렸어. 그림을 구상해 놓고 하는 그리는 편이 아니라서, 한 가지를 그리고 ‘이런걸 그리면 더 재미있겠다’하는 것을 찾아 더 확장해 나가지.




ⓒ 그녀의 꿈은 한량. 한량, 그것은 너와 나의 연결고리


지금의 목표는 어떤거?
개인 작업을 많이 하고 있으니까. 누군가가 내 그림을 봤을 때, ‘이 그림은 여민정의 그림이구나’라고 알았으면 좋겠어. 나름대로 유명해지고 싶고. 내 그림이 사람들의 눈에 많이 익을 수 있게.


꿈도 같은 건가? 
꿈은 한량같이 살기. 놀고 먹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거. 그리고 나중에는 내가 좋아하고 그리고 싶은 그림만 그려도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것.


역시 그게 제일 좋은 거지.
내가 좋아하는 작업을 하면서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


10년 뒤에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정말 한량이 되어 있고 싶어. 여유롭게. 작업비나 재료비 걱정도 안하고. 큰 책상 하나 있으면 딱 좋을 거 같아.


마지막으로 오피스N 독자들에게 한 마디를 남긴다면? 
누구든 그림을 그리는 걸 추천해. 그림을 그린다고 화실에서 이젤 놓고 그런 게 아니라, 그림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멍 때리는 시간'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해. 생각을 정리하고 쉴 수 있는 시간을 일부러라도 만드는 것이 참 중요할 거 같아.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펜을 들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