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초반부터 자랑아닌 자랑을 하자면, 맥대 에디터는 06년도 수능 세대인데 이때 한국 근현대사 과목 만점을 받았다. 국사도 1등급이었을걸. 하지만 역사 공부한다고 다른 과목 공부를 안 했다. 다른 과목도 한국사만큼 공부할 걸. 그리고 얼마전까지 KBS 사극 '정도전'을 열심히 봤다. 배우들이 연기를 잘한 이유도 있지만, 내 안에 잠재된 역사에 대한 마음이 끓어 올랐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 교육에 앞장서고 계신 분을 만나보았다. 대광고등학교와 EBS에서 한국사를 가르치시고 계신 최태성 선생님.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다시금 우리 역사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본다. 스펙이 아닌 인생의 방향을 찾는다는 의미로 역사를 공부하자.
 
에디터 맥대 이대은
포토그래퍼 도로시 이성현
 
ⓒ다른 과목도 한국사만큼 열심히 했으면 SKY대학교는 갔을텐데.

 

대광고등학교와 EBS에서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큰 별’ 쌤 최태성이다.


하하. 역시 ‘큰 별’은 빠지지 않으시는군.
항상 소개할 때 ‘큰 별 최태성’이라고 한다. 학생들이 지어준 별명이라서 애착이 간다.


역사교사로서 지금까지 몇 년을 달려오셨나?
97년도에 첫 교사 부임을 했었고, EBS는 2001년에 시작했다. EBS도 13년차구나.


처음부터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드리면 교사로서 어떤 철학을 가지고 계신가?
‘첫 마음을 잃지 말자’. 아직 많이 부족하고 힘든 점도 많지만 교사를 시작할 때부터 ‘좋은 교사’가 되려고 했다. 지금도 아직 유효하고 ‘좋은 교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 다짐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생각보다 엄청나구나. 사학과 출신으로 알고 있다. 왜 사학과를 선택하셨는지.
솔직히 말하면 다른 과를 썼는데 떨어져서 사학과로 가게 되었다.


ⓒ인터뷰하러 대광고로 부릉부릉이 아닌 뚜벅뚜벅. 얼마만의 고등학교 방문인가.


아...나는 준비된 역사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이군.
원래 사학과를 가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극구 반대를 하셨다. 사학과 가면 굶어 죽는다고. 그래서 부모님과 협상을 봤는데 아버지가 영문과를 가라고 하시더군. 1지망을 영문과, 2지망을 사학과로 지원했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1지망은 떨어지고 사학과로 가시게 됬군.
나도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 2지망으로 사학과를 쓴 건 단순하다. 영어, 수학보다 점수가 잘 나왔고 역사가 재미있었다. 간혹 다른 분들은 내가 사고 깊은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저 현실적인 학생이었지.


사학과를 나와도 할 수 있는 일 많다. 교사라는 직업은 왜?
이것도 단순하다. 그냥 안정적으로 먹고 살 일을 생각했는데 ‘교사’가 떠올랐다. 설마 내가 거창한 대답을 할거라 기대했나?


사실 기대 좀 했다. 지금 고3 담임을 하고 계신데 수업은 어떤 내용 위주로 준비하시나?
고3이니까 당연히 수능 위주로 준비를 한다. 평가원 연계 과정에 맞춰서 수업을 준비해야지.

 
ⓒ역사 공부는 이렇게 즐거운 것이여~


평가원이라...오랜만에 듣는 명사(名詞)이군. 교사 초창기 때는 수업 준비하는 것도 엄청 빠듯했겠다.
그땐 정말 하루 종일 준비해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초창기 3년 동안 내 별명이 ‘최교수’였다. 앉아서 공부만 한다고. 뭔가 많이 알아서가 아니라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열심히 준비했다.



지금은 어떠신가?
지금은 1시간 수업이면 2시간 정도 준비한다. 노하우가 생겼지. 그땐 정말 밤 10,11시가 되야 퇴근했는데.


뭐 일반 회사도 사원 나부랭이는 ‘어버버’하니까. 선생님의 유명한 교수법 중 ‘한판 판서’라는 게 있던데.
고등학생 때 수업을 듣는데 선생님 수업이 머리에 잘 안 들어왔다. 참고서를 그대로 베낀듯한 판서. 이해도 안되고 재미도 없고. 저런 형식의 수업 밖에 안될까 생각을 많이 했다.


결국 스스로 좀 더 효과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선생님이 만드셨나?
그냥 내가 이해를 잘 하려고 혼자 끄적끄적였다. 어차피 역사는 흐름이고, 그 흐름은 인과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인과관계의 흐름을 잡아야 올바른 역사 교육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학창시절 갈구했던 수업을 교사가 되면서 구현한 셈이다.


ⓒ오늘이 22일이니까. 22번 일어나서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설명해봐.
 

수업 내용의 중심을 미리 판서를 하고 시작하시나?
그렇지 않다. 학생들이랑 같이 쓰면서 수업을 한다. A라는 사건이 B로 연결이 되고 화살표를 그리면서 설계도를 만들어 간다. 공간, 여백까지 생각하면서 수업을 하면 맨 마지막에 ‘한판’이 완성이 된다.


대광고 3학년 수업 청강 하고 싶다. 늦은 복학이나 해볼까. 학창시절에 기억나는 은사님 계시나?
내가 역사 교사라서 그런가 역사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동종업계라서?
아니. 엄청 많이 맞았거든. 학생들이 이전 수업 내용 모르면 귓방망이 날리는 건 기본이셨다. 지금도 그 생각이 트라우마로 남긴 했는데, 그래도 재미있는 선생님이셨다.


지금은 정말 상상 할 수 없는 일이군. 졸업생 중에도 선생님 찾아 오는 제자들이 많겠다.
너무 많다. 지금도 학생들이 졸업할 때 이렇게 당부한다. ‘졸업하고 나서 나중에 찾아올 때 “선생님. 저 누군지 아세요?”이렇게 절대 말하지 마라. 그건 결례다’



ⓒ최태성 선생님의 옳은 일침. 참 마음에 와닿는 일침. (출처-Youtube)

앙? 나도 예전에 모교 찾아갈 때 선생님한테 그런 식으로 말했는데.
이렇게 말하라고 한다. “선생님. 저는 몇 학년 몇 반 누구였습니다.”. 나는 매 학기마다 학생 300명을 만난다. 학생들한테 나는 선생님 한 명이지만 나는 학생들 많이 만나서 일일이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나도 다음에는 은사님한테 그렇게 인사 드려야겠다. 혹시 기억나는 학생이라도 있나?
특정 학생을 꼽기에는 너무 많다. 그래도 생각을 해보자면, 초창기 때였는데 엄청 문제아가 있었다. 속으로 ‘아 쟤는 사회 나가면 이도저도 아니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지. 그 후 8년 후...


4주 후가 아닌 8년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후에 백화점을 갔는데 어떤 분이 돗자리를 정말 잘 팔더군. 유심히 봤는데 그때 그 학생이었다. 그래도 먹고 살 능력은 가졌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 깨달았다. 참 된 교사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학생은 변할 수 있고, 그런 용기와 자극을 주는 것이 교사의 사명이자 임무라고 생각한다.


ⓒ참된 교사라면 학생들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괜스레 내가 찔리는군. EBS는 어떻게 오디션을 보고 시작하셨나?
이것도 정말 단순한데 단지 텔레비전에 나오고 싶었다.


아.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다.
흐흐. 첫 출발은 이렇지만 EBS를 시작하면서 나도 성장을 많이 했다.


2003,04년에 인터넷 강의 열풍이 돌았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그렇다. EBS를 시작할 즈음 사교육 인터넷 강의가 급성장했다. 하루는 섬마을에 산다는 학생이 내 EBS 강의에 이런 후기를 남겨 주었다. “저도 사실 메가스터디 강의를 듣고 싶습니다. 하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못 듣고 있습니다. 옆 친구는 메가스터디 강의를 듣는데 제가 EBS를 보고 있으면 뭔가 위축감이 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선생님 밖에 없고 선생님을 믿고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으아니 이건.
이 글을 보고 정말 뒤통수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생존을 걸고 살아야 하는 학생들에게 중요한 사람이구나. 내가 정말 제대로 강의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최고의 강의를 할려고 노력했다.


ⓒ7월 5일 KBS 1TV '역사저널 그 날'을 보시면 최태성 선생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출처-최태성 선생님 트위터)


어느 정도 수준을 가진 강의를 만들려고 하셨나?
내 강의는 돈이 없어서 듣는 게 아니라 돈이 있어도 들을 수 밖에 없는 강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오히려 자랑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감이 온다. 혹시 교사로서 사명감이라도 가지고 계신가?
서울에서 교직 생활을 오래 해서 이 환경이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EBS 강의를 통해 아직 대한민국 교육에는 사각지대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이게 교육을 통해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학창 시절부터 생각해온 고민거리이셨군.
어렸을 때부터 내가 뭘 잘하는지 몰랐다. 공부도 운동도 잘 하는 게 아니라서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교사를 시작하면서 ‘아 내가 뭔가 전달하는 일을 잘 하는구나’라고 느꼈다. 단순한 재능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에서 잘 하는 것을 발견했다.


인생은 30살부터라는 말도 있는데 딱 이 말에 들어 맞는군.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넌 커서 뭘 할거야’ 이런 질문을 계속 하는 건 강박관념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느낀다. 나도 나이 30이 되어서야 뭘 해야 할 지 깨달았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지 정하지 않았다고 고민하지 말고 지금 충실하면 된다.


ⓒ인생은 30부터! 맥대 에디터도 30살 얼마 안 남았군...


학교, EBS, 책 집필, 외부 강의 등등 워낙 스케줄이 많으신 걸로 알고 있다. 그럼 도대체 여름 방학은 어떻게?
쉬는 날 없다. 하루에 4시간 자면서 일을 소화하고 있다.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
지금은 일을 많이 줄이려고 한다. 30대에 학교, EBS만 보고 살다 보니 가족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딸이 6살이었을 때 나한테 전화를 해선 이러더라. “아빠. 우리 집에 놀러와”


 
ⓒ구석기 시대에는 이런 식으로 사진을 남겼을려나.


잠시. 집에 오라는 게 아니고 놀러 오라니?
새벽에 출근하고 딸이 이미 잠자리에 들었을 때 퇴근을 해서 딸 얼굴을 거의 못 봤다. 그 말을 듣고 또 충격이었지. 가족과 좋은 추억을 만드는 시간은 한정 되 있는데 내가 일에만 너무 몰입했다는 생각이 들었지.


뭐니뭐니 해도 머니(money)보다는 가족이 중요하다. EBS는 공적인 공간인데 역사적, 정치적 표현을 할 때 곤란할 때가 있으신지.
한 두번이 아니다. 워낙 많은 분들이 모니터링 하고 있고,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말이나 글을 조심 하는 건 몸에 베여 있다.


특히 현대사 파트에서 가장 힘드시지 않나?
그 부분이 제일 힘들다. 하지만 나는 있는 사실에 대해 양자의 입장을 같이 다루려 한다. 굳이 좌우를 나눌 필요가 있을 까. 나와 다르다고 물고 늘어지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 대해 존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후천적 천재 '정조'의 친필 편지라고 함. 어찌 내 글씨체랑 비슷하네.
*해석-
가을바람에 기후 평안하신지 문안을 알기를 바라오며 뵌 지 오래되어 섭섭하고도 그리워하였사온데
어제 봉한 편지를 보고 든든하고 반가워하였사오며 할아버님(영조)께서도 평안하시다 하시오니 기쁘옵나이다. 원손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는 짧다. 유럽 같은 경우는 몇 백년간 혁명을 거친 후에 민주주의가 정착 되었는데, 우리는 해방 후 50년이라는 시간 안에 전쟁, 혁명, 좌우 분열 이런 과정을 거쳤다. 어쩔 수 없는 과정이지만 나도 양자의 입장을 비교, 설명하려고 한다.


그래도 50년 만에 이렇게 발전한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으니까. EBS 오프닝 멘트는 선생님이 직접 준비하나?
그 멘트는 정말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다. 나도 공감하고, 다른 사람들도 와닿을 수 있는 멘트를 준비하지. 가끔은 준비 멘트 때문에 내가 힘을 얻기도 한다.


방송 NG는?
지금은 NG 없다. EBS 강의만 10년이 넘었는데 NG내면 안 되지.


선생님이라면 사교육계에서 러브콜을 많이 받으셨을텐데.
제의 많이 받았고 흔들리기도 했다. 사교육에 나가는 게 나쁘다고 생각은 안 하지만, 내 인생에 ‘사교육 진출’은 없다. 좋은 교사가 되겠다, 교육 사각지대에 있는 학생들에게 양질의 강의를 전하고 싶다는 첫 마음을 잃지 않고 싶다.



ⓒ무한도전 TV 특강 역사 특집편. 최태성 선생님 등장은 1분 44초, 6분 20초, 8분 28초(출처-Youtube)

 
존경합니다. 무한도전에는 어떻게 출연하셨나?
MBC 예능국에서 전화 오던데? 무한도전 역사 특집을 하는데 정준하랑 정형돈 좀 가르쳐 달라고.



나는 또 엄청난 사연이 있어서 출연하신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잘 마무리 되었다. EBS에서 십 수년 강의한 것보다 반응이 더 크더라.



역시 국민 예능 무한도전의 힘이군. 
무한도전 방송까지 나가고 나서 트위터에다가 촬영 후기를 올렸는데, 그때 새삼 SNS의 힘이 세다고 느꼈다.


SNS는 잘 하면 약, 못 하면 독.
내 트위터를 전 언론사가 다 보고 있었는지, 정말 많은 곳에서 퍼가더라. 정말 까딱 트위터에다 글을 잘못 썼다간 큰 일 날 뻔 했다.


사극 즐겨 보시나? 나는 얼마 전까지 KBS 정도전에 푹 빠졌는데.
나도 사극 정말 좋아하는데 볼 시간이 없다. 하지만 예전에 ‘바람의 화원’이라는 사극을 정말 재미있게 봤다. 우리의 미술을 이렇게 아름답게 화면에 담았다니.


ⓒ5천년 우리의 역사를 꾹꾹 눌러담아


혹시 사극을 보시면 뭔가 좀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바로 눈에 들어올 거 같은데. 역사 교사의 직업병라고나 할까.
당연히 눈에 들어온다. ‘어 저기서 저렇게 풀어나가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이 들지. 하지만 최대한 의식 안 하려고 한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이제는 본격적으로 역사 이야기를 하고 싶다. 선생님 강의에 ‘역사에 무임승차 하지말자’라는 문구가 자주 보이는 데 이건 어떤 의미인가?
기본적으로 우리 근현대사는 개항기/일제강점기~현대사/현대사 이후로 나눌 수 있다. 100년이라는 시간인데 이 시기마다 각각 과제가 있었다. 개항기-신분제 탈피. 일제강점기-독립. 현대사-가난, 독재로부터 탈피.


벌써 감이 온다. 역시 나는 문과 체질이군.
개항기 때 신분제 탈피를 위해 싸우신 선조들, 대한 독립을 위해 싸우신 독립 투사들. 가난과 독재에 맞서 싸우신 분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싸우신 분들 덕분에 지금 우리는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 분들의 이루어 놓은 업적에 무임승차 하지 말자?
그렇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열심히 살아왔듯 우리도 후손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래야 좀 더 나은 대한민국을 물려줄 수 있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가 많은 것을 받았듯이 우리도 받기만 하지 말고,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역사에 ‘무임승차 하지말자’라고 하고 싶다.

ⓒ제자의 진심이 느껴지는군. (출처-최태성 선생님 트위터)

선생님이 근현대사를 좋아하신다고 말 하신 것도 이런 이유로?
근현대사는 지금이랑 가까워서 좋다. 멀어질수록 객체화 된다는 느낌이 강한데, 근현대사는 지금 사람들이랑 가까워서 조금 더 친밀하다. 쉽게 말하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역사를 배우는 것이다.


반만년의 우리 역사 중에서 가장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하시는 역사적 순간이라도 있으신가?
4.19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4.19 이전에는 우리는 ‘백성’이었지만, 혁명 이후 ‘시민’이 되었다.


실질적으로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박히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면 되겠군.
혁명 이전에는 ‘민본(民本)주의’였다. 민본주의는 지배층이 백성을 본(本)으로 생각하고 어여삐 살핀다. 그래서 백성은 수동적 존재이고 보살핌을 받는 조건으로 지배층에 충성할 수 밖에. 하지만 민주주의는 민(民)이 곧 주(主)인이다. 민(民)이 나라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고 생각한다.


국가란 곧 국민입니다!라고 외치고 싶다. 이건 내가 학창시절부터 고민한 점인데 개항기 때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하지 않고 문호 개방을 빨리 했다면 어떻게 됬을까?
먼저 답을 드리면 역사에 If는 없다. If를 하는 순간 소설이 되지. 하지만 재미로 생각을 해본다면, 당시 제국주의 세력이 한반도를 호시탐탐 노리긴 했지만, 식민지 정도는 막아내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곤혹스러운데.


ⓒ너희들에게 큰 별이 되어줄께.


이제 역사는 결과로서 생각하겠습니다. 이제 수능에도 한국사가 필수가 되었고, 한국사능력시험을 채택하거나 인적성 검사에 역사 문제를 내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 선생님은 이런 흐름 어떻게 보시나?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대기업에 역사 특강을 나가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곰곰히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우리 교육이 국영수에만 집중을 해서 인문학적 소양이 얕아졌다고 생각한다.


최근 인문학, 인문학적 소양 겸비. 이런 말을 엄청 자주 듣는데 어떤 의미일까?
기본적으로 인문학적 소양이 강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경쟁, 효율을 따지는 자본사회에서 우리는 늘 소외, 비교 당하며 살고 있다.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되지 않으려면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야 한다.


인문학적 소양을 기른다고 하면 ‘철학’도 배우면 되지 않나?
철학도 좋은데 역사도 중요하다. 역사를 배우고 고민하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답을 구할 수 있다. 이 질문을 계속하면 나 안에 중심이 생기고 그 중심에서 강해지고 행복해진다.


선생님의 좌우명인 ‘한번의 젊음, 어떻게 살 것인가’와도 직결이 되는 군. 그렇다면 직장인들은 왜 역사를 배워야 할까?
직장에서 성공하고 싶으면 역사를 배워야 한다.

 
ⓒ진정한 보수란? (출처-Youtube)


어디선가 역사에서 비즈니스를 배울 수 있다고 들었는데.
직장은 조직 사회/사람과의 관계이지 않나? 그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 모두 역사 속에 있다. 역사를 통해 조직 사회/인간 관계를 공부하면 직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


역사적 소양이 적으면 인간 관계에서 바로 드러날 거 같다.
나도 사회 생활을 해서 느꼈지만, 역사적 교양이 부족하면 드러난다. ‘학벌’은 입사하고 나서 얼마 정도만 영향이 있고, 그 이후에는 인간 관계가 결정한다. 그 인간 관계와 교양을 역사에서 배우자.


오피스N 직장인들! 행복한 직장 생활을 위해 역사를 배웁시다. 동북아에서 일어나는 역사 왜곡은 왜 일어날까?
먼저 동아시아 3국 모두 민주주의 역사가 짧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보다는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탓에 서로의 문제만 바라보고 있다.

 
ⓒ우리 역사 자꾸 그딴 식으로 왜곡하면 이렇게 만들어 버릴거임.


역사 왜곡 문제가 쉽사리 해결될까?
어차피 동북아 3국이 안고 가야 할 문제라서 지속적으로 상호간 연구/교류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 독일은 공동 교과서를 낼 정도지만 역사 연구가 깊지만 우리는 연구 성과가 그렇게 많지 않다. 객관성과 계속된 연구를 통해 간극을 좁혀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앞으로 역사를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한국사 시험 고득점 비법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기본적으로 역사에 대한 큰 틀을 잡고 출발해야 한다. 아까도 말 했지만 역사는 흐름이고, 그 흐름에 대한 인과 관계를 잡지 못하면 역사를 공부해도 내가 어디에 있는 지 모른다.  


음. 나는 고딩 때 역사 교과서를 달달 외웠는데. 몇 페이지에 무슨 사진이 있을 정도로. 덕분에 수능 근현대사 만점을 받았지만.
나쁜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까먹는다. 한국사 개념서로는 부족할 수 있으니 큰 틀을 잡을 수 있는 인터넷 강의를 보는 것도 좋다. 개인적으로 내 강의를 추천한다^^



웃음 웃음 하하 하하 큭큭(이 순간 선생님과 맥대, 두 명의 인턴의 목소리를 담고 싶다). 선생님이 추천해주고 싶은 유적지라면?
경주. 다른 곳도 좋지만 경주는 꼭 가봐야 한다.
 
ⓒ황룡사지 터의 또다른 매력. (출처-네이버 Korea trip 블로그)


아 경주. 수학여행 때 많이 갔는데.
공부 안하고 생각 없이 가면 재미없다. 경주는 부처님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그래서 경주에 가면 천년 고도의 신라와, 신라인들과 교감을 할 수 있다.


그럼 경주 유적지 중에서 좋아하시는 곳도 있나?
황룡사지 유적지. 지금은 주춧돌만 남은 곳이지만, 석양이 내리는 날 황룡사지를 가면 정말 아름답다. 한번 가봐라.


데이트도 역사 유적지에서 해도 될까?
데이트도 꼭 유적지로 가라. 월정사라는 절이 있는데 그 주변 전나무 길이 정말 아름답다. 눈 내리는 겨울날 월정사지 전나무길 가면 러브스토리 찍을 수 있다.
ⓒ오대산에 위치한 월정사와 전나무숲. 이번 데이트는 여기로 가보셔 (사진 출처-네이버 '락김이'님, '귀차이즘'님 블로그)


아 지금은 혼자라서. 내 친구도 그렇고 교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교사로서 가장 필요한 점이라면?
학생들을 사랑해야 한다. 전공 열정도 좋지만 학생들을 사랑하는 게 먼저다.


실력 없는 교사, 학생들이 퇴출시킨다. 이런 말도 있는데.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없어서 그렇다. 전공 과목 실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아이들에 대한 사랑, 애정이 있으면 충분히 아이들과 호흡할 수 있다. .


앞으로 선생님은 어떤 역사 교육을 할 생각이신가?
암기 과목이 아닌, 역사적 팩트와 팩트 간 행간의 여백 속에 있는 이야기를 가르칠 것이다. 그 행간의 여백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구했다면 진정한 역사 공부를 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우리들에게 역사가 필요할 이유를 알려달라.
방금도 말했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잡는데 역사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우리 삶의 길이는 길지 않다. 하지만 역사 속 사람들의 여러 모습을 보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겠다’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역사를 배우면 겸손해지고 삶의 기준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들에게 역사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