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유진씨 인터뷰는 작년 12월 경에 했었다. 근데 왜 이제 올라왔을까? 사실 김봉사 에디터와 이전 땅콩 에디터가 인터뷰 녹음 파일을 날려먹어서 인터뷰를 올리지 못했다. 그 후 유진씨는 호주로 밀항을 해서 인터뷰는 더이상 naver인 줄...그러다 이번 5월 도유진씨가 '글로벌 해커톤' 행사 차 다시 서울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인터뷰 날짜를 다시 확정함.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유진씨는 이전보다 더 벌려놓은 일이 많았다. 지금까지의 일을 이번 인터뷰에 담을 수 있을까?


에디터 맥대 이대은
포토그래퍼 봉사 김지훈




호주 스타트업을 위한 협업 공간 Spacecubed의 코디네이터 도유진이다.


참 이번 인터뷰는 준비하기 어려웠다. 왜냐? 뭐 이렇게 벌려놓은 일은 많은 건지. 지금 본인이 소속해 있는 Spacecubed는 뭐요?
호주 스타트업을 위한 협업 공간이다. 보통 우리나라 스타트업도 1인 기업에서부터 시작하는데 그런 1인들이 모여있는 오픈 사무 공간이다.


 
ⓒ인터뷰 사전 조사 할 때 맥대 에디터의 표정(이야기 거리가 참 많구만)


거긴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해보자. 나랑 공통점이라면 중국 대학교 출신이네. 그것도 같은 성()안에 있는 곳. 중국은 왜 간건가?
이전부터 유학을 희망했는데, 돈이 문제였다. 그러다 대학교 홍보 책자에서 복수학위 장학생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 그래서 질러봤다.


부모님께서 쉽게 허락하셨나?
부모님의 교육 철학은 ‘독립’이셨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나를 고등학교까지만 뒷바라지 해주셨고, 그 이후는 내가 알아서 먹고 살아야 했다.


ⓒ이때랑 지금이랑 같은 사람인가?


아 그래서 유진씨가 이렇게 독립적이었군. 복수학위 장학생이라면 미국으로 갈 수 있었을텐데?
사실 미국 기준이 만만치 않아 아쉽게 탈락했다. 차선책으로 선택한 게 중국이었는데. 내 커리어의 연결 고리가 되었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뭔가 이야기 거리가 많아 보이네. 장학생 제도로 유학 가서 웬만한 노력으로는 살아남기 힘들었을텐데?
나는 경영학과로 들어갔는데 본과/중국어 성적 B+가 안되면 모든 돈 줄이 차단되었다. 학비, 생활비, 교재비 등등. 그래서 하루하루를 불태우면서 공부했다.


하이고, 나는 중국에서 놀면서 공부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안 놀아서 후회스럽군. 그때 공부한다고 술을 안 마셨는데, 그 습관이 아직 남아있다. 남들이 나를 보면 사발로 말술 말아먹게 생겼다는데.


그건 나고. 중국 대학교 졸업하고 미국으로 가게 된 계기도 참 다양하더군. 조금씩 썰을 풀어주시게.
졸업 후 우리나라 전자상거래 창업자들이 만든 싱가폴 회사 MD제의를 받았다. 근데 싱가폴을 영어가 공용어잖아? 그래서 내가 ‘저는 영어 잘 못하는데요’이랬더니 그 회사에서 ‘괜찮아. 영어하는 사람 또 뽑을 거야’이러더군.



ⓒ음. 내가 영어를 배우는게 빠를까 저 사람들이 한국어 배우는게 빠를까.
 

근데 그게 왜?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내가 영어를 못하면 미래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겠다’라고 깨달았다. 그래서 대학교 4학년 때 잠시 한국 들어와서 토익이랑 토익스피킹 처음 쳐봤다.


싱가폴 회사 제의를 받았을 때,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았다면?
글쎄, 다른 경우의 수는 모르겠는데. 상품기획자 MD에 대한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일도 ‘영어’ 때문이겠네. 근데 여기서 또 내 귀를 의심하는 이야기는 미국에서 정부 지원금 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 ‘정부해외인턴 WEST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으로 갔다. 맞나?
그렇다. G2라 불리는 양 국가에서의 경험도 탐이 났고, 중국에서도 공짜로 대학교 다녔는데 미국에서는 일부분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서 공부하고 일하고 싶었다.


내가 알기로는 그 프로그램 선발되기가 쉽지 않은데?
나도 두 번이나 탈락하고 세 번째 도전에서 합격했다. 모자란 실력이었지만 여러모로 타이밍이 좋았다.


ⓒ글로벌 해커톤 행사 현장. 선(善)의 해커들이 모였는데, 스미싱 하는 닝겐들 좀 잡아주소.


WEST랑 싱가폴 입사 제의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을법한데?
사실 세 번째 WEST 면접 때 싱가폴 회사 입사 제의에 대해서 할까 말까 고민 중이었다. WEST 최종 합격한 상태도 아니라서 많이 갈등했지.


그럼 미국으로 가겠다는 다짐은 어떻게 하게 됬나?
아버지께서 ‘지금 1,2년이 너의 인생에서 길고도 중요한 부분이라 조바심도 생기겠지만, 전체 인생을 바라보면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다. 지금 당장 앞으로의 몇 년이 아니라, 한 평생을 놓고 봤을 때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해라’고 조언하셨다. 그래서 싱가폴 회사에는 정중히 거절 의사를 밝히고, WEST로 선택했지.


명언이시네. 이제는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이야기를 풀어달라.
장학제도로 간다 해도 샌프란시스코의 생활비는 무급 인턴십으로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생활비를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유급 인턴십을 열심히 찾아봤다.


미국은 외국인에게 유급 인턴십을 거의 제공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맞다. 하지만 나는 중국어도 할 줄 알았기 때문에 그나마 쉽게 유급으로 일할 수 있었다.


ⓒ하우 두유 두? 두유 라이크 두유?


그때 일한 회사는 어떤 곳이었나?
Altius Education라는 온라인 교육 플랫폼 회사였다. 오하이오에 본사를 두고 있었는데 50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스타트업이었다.


오호라~여기서부터 스타트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군. 샌프란시스코면 실리콘밸리가 있는 곳 아닌가? 거기 스타트업의 성지라고 들었소.
길가다가 부딪히는 애들이 구글, 페이스북, 드랍박스 등등 이런 애들이다.


직접적으로 만난 사람도 있나?
직접적으로 부딪힌 사람은 없는데 내 지인이 바(Bar)에서 페이스북 '좋아요' 디자인 했던 사람을 만났다더군. 구글에서 드랍박스로 넘어간 현지인을 만났는데 그 사람 마인드가 참 대단하더라.


전형적인 스타트업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인가 보네.
그 사람한테 왜 구글을 박차고 나와 15명뿐인 드랍박스로 왔냐고 물어보니까 “구글은 이미 모든 게 구축된 상태인데, 거기서 내가 뭘 공헌할 수 있나?” 이러더군.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그런 사람이었어.


 
Altius Education에서 일했을때 유진씨의 직속 보스 Terry. 표정만 봐선 별로 안 친해 보이는데.



그 말은 본인한테도 해당되는 말 같은데? 
어느 정도. 주위에서는 나보고 취직도 어려운 마당에 왜 이거 했다가 저거 했다가 그러냐고 하는데, 나는 불안하지 않다.


같은 청춘을 보내는 사람으로서 나도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이군. 미국 사회에서 그리고 미국 회사에서 일할 때 어떤 점을 많이 내세웠나?
우리는 ‘겸손’을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튀면 손해본다’라는 강박관념이 있는데 나는 전혀 눈치보지 않고 정직원들 보다 더 과감하게 시도했다.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 했고, OK되면 스스로 추진해서 했다.


칼 같은 해고가 일상화된 미국아닌가?
인턴은 어지간해서 계약 기간 중에 해고 될 일은 없다. 대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전심전력으로 일을 해야 살아남는다. 더군다나 나는 유급 인턴이었기 때문에 수백배 더 열심히 했지.



 역시 업무는 알코올 버프를 받아야 (Feat. 참이슬)


여기서 잠깐 삼천포로 빠지는 질문을 드리자면, 현지에서 영어 공부는 어떻게 했는지? 
중국어만 공부하다가 대학 졸업반때 영어를 다시 시작해서 많이 부족했다. 인턴 회사 동료들이 대화와 이메일에서 쓰는 표현들은 따로 정리해놨다. 집에 와서 그 정리한 표현들을 다시 공부하고. 현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서바이벌 잉글리쉬를 접했군. WEST 인턴 생활을 되돌아보면 어떤 점을 배웠다고 할 수 있나?
새로운 아이디어, 즉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이 앞으로 우리 생활을 바꿀 것이라는 점을 느꼈다. 자유롭고 열린 사고방식, 끝없는 추진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더불어 알게 되었지.


이 몸도 찬성합니다. 인턴 생활을 끝낸 후 한국에 와서 바로 벤처스퀘어에서 일하게 된건가?
벤처스퀘어는 귀국 전부터 염두 했던 곳이다. 아무래도 벤처스퀘어가 대한민국의 어지간한 스타트업 관련 정보는 모두 다루는 곳이라 관심이 갔지. 자소서랑 포트폴리오 몇 가지 미리 메일로 보내고, 귀국 후 면접보고 일하기 시작했다.




ⓒ살아남기 위해 영어를 했던 시절만 생각하면 저절로 혀가 내둘러진다.


벤처스퀘어에서는 무슨 일을 했나?
알다시피 벤처스퀘어도 스타트업이라서 어떤 직무를 고정적으로 맡거나 그러진 않았다. 팀원들 모두 일당백으로 뛰어다녔지. 나는 벤처스퀘어 웹사이트에 올라가는 콘텐츠 선별, 에디팅, 발행이 주된 업무였다.


벤처스퀘어에 있으면서 또 실리콘밸리 가지 않았나?
때마침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돕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었는데. 기회가 되서 인솔차 실리콘밸리로 갔다. 인턴 생활 중 실리콘밸리 경험이 벤처스퀘어에도 도움이 되었는데. 다시 실리콘밸리로 가다니. 나는 행운아!


그런 행운 나한테도 나눠주시오. 근데 그렇게 열심히 한 벤처스퀘어를 왜 올해 초에 그만 둔거지?
우연히 지하철을 타고 있었는데 서핑 영상을 봤다. 그 순간 또 어딘가 떠돌아다니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단순히 서핑 때문에? 더 많은 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절대 생각없이 일을 그만 둔건 아니다. 벤처스퀘어에서 좋은 사수 밑에서 많은 걸 배웠지. 하지만 문득 든 생각이 ‘현재를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에 안주해서는 안되겠다’였다.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 젊고 건강할 때 좀 더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이 분 최소 포세이돈 사촌(출처-도유진씨 페이스북)


역마살’이라고 쓰고 ‘경험’이라 읽겠다. 그럼 서핑은 어느 나라에서 했나?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2주 동안 서핑만 했다. 그러면서 ‘아 호주 가서 제대로 서핑해보자’하고 호주로 넘어갔지. 그리고 이건 역마살이 아니다. 재미있는 일을 하다 보니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뿐.


음. 여기서부터 호주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되겠군. 지금 일하고 있는 스페이스큐브드도 이때 만난겠다?
그렇다. 어느 날 호주인 친구가 파티에 초대하더군. 근데 그 친구가 스페이스큐브에 입주해있던 친구였고 파티에서 스페이스큐브 CEO를 만났다. 그 CEO 왈: 우리가 아시아 시장 공략하고 있는데 우리랑 같이 프로젝트 몇 개 해볼래?  나: 콜. CEO: 그래 콜.


 
ⓒ유진씨 아버지도 인정한 역마살. 하지만 본인은 역마살이 아니라고...


이야, 쿨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사람이네. 인터뷰한 오늘 그 팀원들이랑 같이 서울 왔나?
그렇다. 내 블로그에 호주 스타트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올렸는데, 그걸 본 한국의 스타트업 관련 조직이 한국에서 열리는 글로벌 해커톤에 호주 스타트업 사람들을 데려와 달라고 요청을 하더군. 다른 스페이스큐브 팀원들이랑 논의하고 콜 했지.


참 바쁘게 산다. 
바빠 보이지만 내 몸과 마음은 프리하다. 고로 내 지갑도 프리하다.


이렇게 이것저것 하면 주위에서 뭐라던? 전형적인 한국적 사고를 지닌 분들은 좀 이상하게 생각할 거 같은데. 
벤처스퀘어에서 나왔을 때도 왜 그렇게 끈기 없이 회사 나왔냐고 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하지만 우리 나이대에는 사실 뭔가 이룰 수 있는 기간도 아니고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기회만 생기면 모든 일 다 해볼려고.



음. 내가 뭐 할 말이 없네. 유진씨 블로그도 꽤나 유명하던데.
벤처스퀘어에서 ‘콘텐츠’에 대해서 많이 공부했다. 내가 특출난 능력은 없지만 글로써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몇 가지 글을 썼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고, 서버도 몇 번 다운 됬다. (도유진씨 블로그: 
http://dareyourself.net/1097)



 

ⓒ내 영혼은 Free, 내 지갑도 Free

 
그 중에서 한국의 기업 문화인 ‘칼퇴’에 대한 글이 반향을 일으켰던데.
반향이라고까지 하기는 좀 그런데 내가 미국 회사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과 비교해서 적을 글이다.


어떤 내용인지 잠시 소개해달라.
자세한 내용은 블로그를 참조해주시고. 대충 이런 내용이다. ‘칼퇴’라는 말 자체가 있어서는 안된다. 내 일을 끝내고 정상적인 퇴근을 하는게 정상인데 우리나라에만 유독 이상한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야근 안하나?
미국 회사는 야근을 해야만 끝낼 수 있는 일을 아예 시키지도 않는다. 그리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은 정리해고 0순위다. 왜냐면 야근을 하면 수당을 1.5배 더 줘야 해서 야근=회사 자산 갉아먹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김 대리, 자네 일 다했으면 이만 퇴근하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아무튼 야근은 무능력의 대상이 된 셈이군. 유진씨의 지인이라는 마이클코겐이라는 분도 한국의 기업문화에 대해 글을 썼더라.
안지 얼마 안된 지인이다. 그 분도 한국의 기업 문화에 대해 말하길 “내가 6시 반에 퇴근하려고 하면 주위에서 ‘네가 우리를 버리고 간다’ ‘너는 우리처럼 희생을 안한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는군. (마이클 코겐씨의 관련 글: 
http://dareyourself.net/986)


그래도 용감하신 분이네. 
그 분이 말한 한국 기업의 특징은: 상명하달식의 의사소통. 정기적인 회식과 친목 모임에도 불구하고 진솔한 소통의 부재. 사내 메신저와 카카오톡 등 스마트폰으로 인한 시간 낭비. 음주와 흡연에 관대한 조직 문화 등등 이 정도다.


왜 이렇게 심히 공감이 되는건가. 업무 강도는 세지만 노동생산성은 최하위로 달리고 있는 현실이 언제 해결될지는 미지수겠지. 본인 연애는 안하나? 너무 분위기가 딱딱해서.
작년부터 공식적인 솔로다. 이번에도 행사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는데 허한 기분이 들더군. 한옥 숙소에서 혼자 달 보고.


말만 들어도 우울하네.
대학 시절부터 1,2년 단위로 여기저기 자유롭게 다니는 게 익숙해지다 보니 외로움? 고독? 이라는 것과 친해지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것 같다. 근데 여유. 자유로운 건 좋은데 타지에서 혼자 아플 때는 엄청 서럽다.


ⓒ두유 노우 깽남 스톼일?


분위기 급침울. 올해 또 떠돌아 다닐 계획 있나?
딱히 세워놓은 계획은 없다. 그때 그때 하고 싶은 일 생기면 할 예정이다. 다만 호주는 7,8월에 겨울이라 발리 가서 서핑하고 싶다. 호주 스타트업을 위한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다.


주위 사람들은 도유진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던가?
그러게. 어떤 평가를 받고 싶다 이런데 별 욕심이 없다. 어떤 분야가 되든 도유진이라는 사람을 통해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 이런 사람으로 되고 싶다.


미래 본인이 생각한 커리어 플랜은 없나?
커리어 플랜 따위는 없소. 그런걸 세우면 계획 안에 갇혀있는 느낌을 받는다. 방금도 말했지만 그때 그때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것이다.


이 글을 보고 있는 오피스N에게 한마디 하시게.
생각보다 우리 청춘은 잃을게 없다. 지금 이 일을 그만 두면 내 커리어가 망한다? 이건 근거 없는 자신감이자 허세일 뿐이다.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 그러면 일단 질러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