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jpg
전공이 중국어인 본 에디터는 학창시절 중국어 시험 HSK 때문에 고군분투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전공 4년, 중국 유학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서 중국어로 '밥 먹었냐?'정도는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지만, 항상 시험 앞에 애를 먹었다. 오프라인 학원을 다녀볼까 했지만 여의치가 않았고 결국 선택한 것이 인터넷 강의였다. 이번 인터뷰이인 문정아 강사님 강의 덕분에 HSK고급을 한번에 취득했다. 그때 감사의 의미로 문정아 강사님을 만나 직장인 인터뷰를 진행해본다. 오피스N 니취팔로마?
 
에디터 이대은
포토그래퍼 이대은


KakaoTalk_a754f895e0e69497.jpg
12년 차 *HSK 전문 강사 문정아다.
*HSK(Hanyu Shuiping Kaoshi. TOEFL에 가까운 중국어 시험. 1~6급이 있는데 급수 숫자가 높을수록 난이도도 상승)


최근 득녀를 했다고 들었다. 축하한다. 이름은 뭐라고 지었는지?
‘예지’라고 지었다. 예술의 ‘예’. 지혜의 ‘지’


전형적인 딸의 이름이군. 중국어 교육 쪽으로는 거의 최초로 인터뷰하는 건데. 소감이 어떠신가?
다른 강사들도 많은데 일부러 찾아와줘서 고맙다. 오피스N 인터뷰를 통해 중국어와 그리고 강사로서의 이야기를 모두 전하고 싶다.


일부러 나의 은인이었던 강사님 모시고 싶었다. 12년 동안 가르쳤다고 했는데, 본인 강의의 철학이라면?
따뜻하고 살아있는 강의! 혼을 담은 강의!


살아있는 강의, 솰아있눼~. 생각해보니 본인 전공은 중국어가 아닌 중의학이다. 참 의아스럽다.
사실 중의학에 관심이 생긴 계기가 있었다. 


어떤 계기인지?
고1때 어머니가 다치셔서 일반 병원에 입원했다. 양방 병원에서는 별 진전이 없었다. 그러다 중의학 공부하신 의사 선생님께서 침 2방을 놔주셨는데 어머니는 완쾌. 끝.


오~ 허준 강림이군. 관심이 생길만한데. 그런데 국내에서 한의학을 배울 수 있는데, 왜 굳이 중국으로 갔는지?
아무래도 그 선생님이 중의학을 공부하셨던 분이셔서 직접 중국으로 가서 중의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2.jpg
ⓒ칠판에 있는 내용은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만 안다는 게 함정


그럼 중국 어디서 공부하셨는지?
요녕성 심양으로 갔다. 심양에 있는 중의학 대학교를 추천 받아서 거기로 갔다.


중국에서 공부하려면 어쩔 수 없이 중국어를 해야 하는데. 중국어는 이전부터 좀 했었나?
중국 가기 전에 종로의 모 학원에서 2달간 배웠다. 근데 그 때 학원 선생님이 대만 분이셔서 좀 고생했다.


아, 대만에서 쓰는 중국어랑 좀 다르지. 
중국 본토가서 제대로 배웠다고 할 수 있지.


혈혈단신 중국 가서 공부하기가 쉽지 않은데. 게다가 중의학이라는 전문 지식이고.
공부량이 정말 많았다. 하루에 4,5시간 자고 공부만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향수병도 생겼다.


향수병을 이겨낼 수 있었던 방법이라면?
딱히 방법은 없지. 하지만 학교 교수님들이랑 친구들이 많이 도와줘서 극복 할 수 있었다.


중국 도착 하자마자 향수병 걸릴 정도로 공부만 했나?
아니다. 도착 후 6개월 정도는 여행도 많이 가고 친구들이랑 많이 어울렸다. 하지만 수업이 제대로 시작되니, 공부량은 많아지고. 해야 될 일도 많아지고.



4.jpg
ⓒ하얀 건 종이고 검은 건 글씨로다.


심히 공감이 간다. 기억나는 중국인이라면?
기억나는 교수님이랑 친구가 있다. 중약학 과목의 최고 권위자 교수님이신데 내가 귀국하기 전에 그 분이 집으로 찾아왔다. 귀국 선물이라고 찻잔 세트를 나한테 주셨거든.


그게 끝?
아니. 또 있다. 교수님들이 책을 쓰시면 편집위원 명단에 석박사 학생들 이름을 넣는데 그 분이 내 이름도 넣어주셨다.


음. 평범한 일은 아니지 않나?
극히 드문 일이지. 유학생 중에서는 내 이름이 최초로 그 명단에 들어간 셈이다.


와, 진짜 딸처럼 생각했나보군. 교수님들 사이에서 열심히 했던 유학생으로 기억 되었겠다?
부끄럽지만 칭찬도 많이 받았다. 현지 주변 분들이 칭찬을 많이 해줬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라는 말 중에서 내가 그 고래일껄?


오호호, 교수님말고 다른 친구 이야기는?
성택동이라는 친구가 기억에 남는다. 하루는 내가 아파서 고생 고생 열매를 먹었는데, 그 친구가 대뜸 나한테 먹고 싶은게 있으면 사다 준다고 하더군. 그래서 만두가 먹고 싶다고 했는데.


아, 생각보다 맛은 별로?
그냥 밀가루 반죽에 다진 양배추, 돼지고기 넣어서 만들었더라고. 그 친구가 고백하길 자기도 처음 만든 만두라던데.

 
ⓒ갑자기 생각나서 중국어와 관련된 레전드 영상 투척. 발음 주의. (출처-Youtube)


대략 어떤 맛일지 상상이 간다. 으 뻑뻑한 느낌이 느껴져. 
솔직히 맛은 없었지. 근데 맛보다는 그 친구의 마음이 중요하지 않겠어?


그렇다. 나도 많이 느껴봤으니. 아 갑자기 생각났는데, 중국인 학생 기숙사 가보셨나? 
가봤지. 나는 무슨 닭장인줄 알았어. 내가 있었던 유학생 기숙사는 나름 괜찮았거든. 그래서 아까 말한 친구 데리고 와서 재우기도 했어.


그럼 중의학만 5년 공부를 했는데, 왜 중국어 강사를 했는지?
사실 이거는 할 이야기가 많다. 중의학 학과 생활 초기에 어머니한테 중국어 전공으로 바꾸고 싶다고 했다. 근데 어머니는중의학을 공부하면 중의학 지식도 있고 중국어도 하지 않냐고 하시더군. 중국어를 전공하면 중국어만 할 줄 아니까.


그렇군. 그래서 진득하게 중의학 5년 공부하셨네. 후회하지는 않는지?
전혀. 중의학도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


귀국하고 나서 바로 강사로 시작했나?
아니. 한국에 온 후에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남들도 대학 졸업하면 회사 다니니까 나도 그래 볼까 싶어서.

 
ⓒ이전 영상은 그냥 웃자고 올린거고. 이게 실제 중국어 수업의 모습. (출처-Youtube)


왠지 다녔던 회사가 한 두개는 아닌 느낌인데?
잘 아네. 처음에는 전공 살리자 해서 한의학 벤처 기업에 다녔지. 이후 좀 활동적인 일을 해보고 무역 회사로 옮겼다. 그 다음에는 대만계 게임 회사에도 다녔다.


생각보다 다양한 곳에서 직장 다니셨네. 
다른 직장인처럼 야근도 많이 했다. 사무실에서 자기도 하고.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기가 어떤 시행착오였다고 생각한다.


어떤 시행착오?
뭐랄까, 내가 어떤 적성이 있는지 찾아가는 과정? 직장 생활하면서 나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걸 잘하고 좋아한다는 점을 깨달았어.


아 그럼, 그 점 때문에 강사를 시작하게 되셨군?
그럴 수 있지. 근데 사실 회사 다니면서도 중국어를 가르쳤어.


말로만 듣던 직장인 투잡?
그룹 과외 형식으로. 그런데 웃긴 사실이 뭔지 아나?



합침.jpg
ⓒ수강생들에게는 언제나 언니와 같은, 누나와 같은, 옆집 이웃과 같은 존재로 남고 싶습니다.


설마 돈?
그렇다. 거의 과외를 4명 정도 하니까 과외비가 당시 일반 직장인 대리 월급보다 많더라.


짭짤한 수입 수준을 넘었군. 그때 당시도 중국어가 요즘처럼 인기 있었나?
지금만큼은 아냐.


그럼 그 친구들은 왜 배웠던거지?
취미로 배우던 사람. 대학 입시용으로 준비하는 고등학생도 있었고, 화교 학생인데 중국어를 잘 못해서 배우는 경우도 있고.


준비된 중국어 강사였군. 본인의 전담 부분은 HSK인데 수업을 준비하는 주된 방법이라면?
매번 HSK 정기시험을 친다. 이건 강사로서 당연한 거니까. 


HSK 강의를 막 시작했을 당시에도 수강생 많았나?
02년부터 강의 시작했었지. 그때 뭐 유명한 강사는 아니었지만, 100명은 넘었지 아마?


그 정도는 유명 강사 수준이 아닌가. 여기서 오승환표 돌직구를 던져보면 본인도 중국어가 어려우신지?
어려울 때도 있고 쉬울 때도 있고.


무슨 의미?
내가 부족한 부분은 어렵게 느껴져서 항상 공부를 한다. 공부를 계속 하면 재미있어지고 익숙해진다는 의미다.


 
세로.jpg
ⓒ좌우명을 뭘로 적어야하나...고 to the 민


스타 강사도 사람이군. 내가 알기로는 중국어 강사의 수도 어마어마한데 경쟁률이 치열하겠다.
서울에만 200명 정도 있지. 여기서 스타급 강사라고 하면 3명 정도?


본인도 그 3명 중 한 명?
아마도^^.


뭐랄까 후임 강사도 따로 양성하시나?
양성이라기 보다 해야 할 강의가 있으면 후임 강사들한테 많이 배분한다. 그 분들의 성장을 위해서.


그러면 신규 강사들을 모집한다고 했을 때 가장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나는 무조건 강의력만 본다. 아무리 중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해도 강의 전달력이 떨어지면 별로.


원어민도 마찬가지인가?
그렇지. 원어민은 특히 표준어 구사 능력도 주의 깊게 보고 있다.



5.jpg
ⓒ그래 결정했어. '진인사, 대천명'으로 적는거야! 헤헷.


나도 한참 중국어를 공부할 때 선생님 강의를 봤다. 근데 좀 특이하게 원어민이랑 공동으로 강의를 하던데, 이건 마케팅의 전략인가?
이건 2가지 이유가 있다. 내가 처음으로 이 방식을 도입했는데, 내가 중국어를 전공한 게 아니라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 원어민이랑 같이 하면 그 점을 보완할 수 있지.



다른 한 부분은?
강의를 오래 하고 싶어서.


오래?
예전에 하루에 16시간 동안 강의하다보니 건강에 문제가 생기더라. 원어민이랑 같이 하면 어느 정도 강의량을 배분할 수 있거든. 이 점을 생각했다.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본인이 가르친 학생들 중에 非중국어 전공자들도 많은가?
반반이다. 근데 전공자라고 모두 중국어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더라. 전공자들도 그냥 취업을 위해서 공부하는 경우도 많지.


그런 학생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어쩔 수 없는 사회 현상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더 중국어를 재미있게 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지.



3.jpg
ⓒ배움에 있어 남녀노소가 무슨 상관입니까? 배움의 열정만 있으면 되지.


그 와중에 기억에 남는 학생은?
27살 비전공 여학생이었다. 그 학생도 취업을 위해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더군. 오로지 내 인터넷 강의만 보면서 공부했는데 중국어 기초 마스터하고 HSK 4,5급을 취득했다.


대단하네. 중국어 전공자와 비전공자. 중국어 공부에 있어서 다른 면이 있을까?
우선 비전공자라면 회화를 공부하는 것이 좋고, 전공자는 회화랑 어법을 동시에 해야 좋다.


어법, 애증의 어법!
어법이라면 원어민 강사들도 어려워한다. 홍단 선생님이라고 있는데 그 분이 하루는 HSK6급 어법 문제를 연구하고 있었다, 도저히 답이 안 나와서 중국어 교육 지인들한테 물어봤데. 그런데 그 사람들도 원어민인데 다 틀렸다고 하더군. 이 정도면 어법이 쉬운 부분은 아니야.


그렇다면 어법 공부를 대비한 분들을 위해 간략한 팁이라면?
어순을 먼저 공부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어순은 언어의 구조이고 전체적인 틀을 볼 수 있는 도구라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시험을 위한 공부는 재미가 없는데, 좀 더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자기 취향에 맞는 방법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내가 아는 학생은 슬램덩크를 중국어판 만화책으로 봤다. 나 같은 경우에는 중국에 있었을 때 태극권을 배우면서 중국어를 습득하기도 했고.


나도 한참 중국어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중국 드라마랑 예능 프로그램을 엄청 많이 봤었는데. 도움이 많이 되더라. 
중국 TV 프로그램도 좋고, 중국 노래를 통해 배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1.jpg
ⓒ직딩 여러분. 제2외국어 하나 배워보는건 어떤가요? 꼭 중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건 아님.


이번에는 조금 진지한 질문이다. 중국어 강사의 입장에서 봤을 때 중국어의 열풍,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까?
앞으로 지속될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들 세대에게는 필수가 되지 않을까?


혹시 영어의 지위를 넘어서는?
중국인들의 분포를 보면 그럴 수 있지. 중국 대륙만 아니라 싱가폴, 말레이시아, 유럽 미주 등에도 수많은 화교들이 있고. 또 중국 관광객 수만 생각해도 중국어의 수요는 엄청나지 않은가?


갈수록 늘어가는 수요를 생각하면 그렇겠네. 중국어 강사 일은 언제까지 하실 생각인지?
건강이 허락되는 한 계속 하고 싶다. 온/오프라인에서 학생들과 계속 교류하고 싶다.


강사로서 최종 꿈이라면?
10~20대 학생들에게는 친근한 언니, 누나와 같은. 그리고 중장년층 학생들에게는 친구, 옆집 이웃 같은 강사로 남고 싶다. 그리고 경력 단절 여성들이 자신들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본인에게 중국과 중국어는 어떤 의미인가?
중국은 나에게 제2의 고향. 중국어는 나의 꿈을 실현케 해준 고마운 존재.


오피스n에게 한마디 하자면?
많은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더욱 더 성장하고 부딪혀 봤으면 하다. 힘든 시기가 있을수록 더 높이 성장하지 않을까?

 
판넬.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