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헨티나의 페론 대통령의 부인인 에바 페론(Eva Peron)’의 애칭


 


1919년 사생아로 태어나 어려운 시절을 보낸 에바 페론15세가 되던 해에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상경하여 1943년에 육군 대령이던 후안 페론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그녀는 후안 페론의 출세를 위해 어떠한 방법도 가리지 않았으며, 1946년 대통령 선거에서 후안 페론이 당선되자 에바 페론은 남편을 설득하여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를 표방한 페론주의를 내걸었다.


 


▷ 페론주의는 기간 산업의 국유화, 노동입법 추진, 남녀 평등의 헌법 보장 등을 이뤄내어, 노동자와 여성, 빈민들이 그녀를 후원하고 지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에바 페론은 폭넓은 민중적 지지를 이용하여 그녀와 반대되는 성향의 정치가들을 핍박하고, 군대를 비대하게 증강시켰으며, 무리하게 중공업 계획을 추진하였다. 결국 에바 페론의 사치스런 생활과 정부의 부패가 심해져, 아르헨티나의 경제 상황은 악화되어 갔고 국민들은 높은 물가고에 시달려야 했다.


 


에바 페론는 척수백혈병과 자궁암으로 34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지만, 1973 10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후안 페론 '에비타 시절'을 그리워하는 노동자들과 여성, 빈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 최근 에비타의 사망 60주년을 맞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심가 ‘7 9일의 거리에 그녀의 거대한 벽화가 들어서서 주목을 받고 있다.


 


짧고 화려했던 에비타 '에바 페론’ [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