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양자전기역학의 아버지’, ‘중성자의 마술사’, ‘원자력의 설계자라고 불리는 페르미1901년 로마에서 태어나, 1918년 피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여 1922년에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1926년에는 '페르미 통계'에 관한 이론을 발표한 후, 로마 기숙 학교의 교수로 취임하였으나, 아내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무솔리니 정권에게 박해를 받았다. 결국 1938년의 노벨상 수상 후 미국에 망명하였고, 1939년에 컬럼비아 대학교의 물리학 교수가 된다.


 


▷ 이 후 페르미 70년 전인 1942년에 세계 최초의 원자로인 시카고·파일 1를 완성시켰다. 뿐만 아니라 원자핵 분열 연쇄 반응을 제어하는 것에 성공했으며,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우주선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페르미는 암으로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링거의 물방울이 떨어지는 간격을 측정해 유속을 산출하였다고 한다.


 


핵안보정상회의가 북핵을 막는다고? [한겨레]